
인도·네팔·방콕·캄보디아 배낭여행
12월 17일 – 1월 30일 · 44박 45일 · 인도, 네팔, 태국, 캄보디아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월까지의 인도·네팔·방콕·캄보디아 배낭여행. 인도 북부와 남부, 네팔 트레킹, 방콕 경유, 앙코르 왓 탐방.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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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시험을 끝내고 그 길로 공항으로.
겨울인데 샌들 차림. 공항 맨 뒤편에 모인 일행은 학생, 아주머니, 스님까지 구성이 다채롭다.
입국하지 않으면 플랫폼 사이 통로가 전부. 침낭을 펴고 노숙하며 주의사항을 듣고 자기소개.
첫인상은 “향”. 기내식은 베지터블과 논베지터블, 그리고 첫 킹피셔 맥주.
후끈한 공기와 인도 냄새. 100달러를 4,730루피로 환전. 지폐마다 호치키스 자국.
택시가 “위험해서 못 간다”며 코넛 플레이스까지 돌아가는 통에 한바탕. 그 와중에 아그라·델리·자이푸르 지도를 챙겼다.
델리–아그라, 아그라–자이푸르, 자이푸르–조드푸르, 조드푸르–자이살메르, 자이살메르–조드푸르 5구간. 20명이 넘어 몇 구간은 웨이팅.
학생 1루피. 2·3층 무기와 배 모형, 1층 신화 속 신들의 상.
40루피. 거의 뮤지컬에 가깝고 러닝타임 3시간. 극장 안이 떠들썩해 중간에 좀 잤다.
신라면과 떡만두국, 50루피짜리 물소 스테이크. 론리플래닛도 850루피에 구입.
릭샤 파업 중. 겨우 잡은 오토릭샤가 겁을 먹고 엉뚱한 데 내려줘 트럭을 얻어 타고 도착. 입장료 2달러.
카메라피가 아까워 카메라 없이 들어갔다가 후회. 첨탑 위 그늘에 몸을 눕히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2등 슬리퍼. 타자마자 침대 다리에 배낭을 묶었는데 너무 빨리 도착해 버렸다.
한국 사람이 많은지 백숙을 판다. 기대 없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입장료 5달러+500루피, 인도 최고가. 완벽한 대칭, 다만 왕비의 관이 있는 부분만 예외. 어디서 찍어도 엽서라 메모리를 다 썼다.
샤 자한이 폐위된 뒤 유폐되어 강 건너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죽어간 곳. 막힌 곳이 많아 헤매기 쉽다.
홍콩→방콕 변경을 두고 에어인디아와 발권사가 서로 미뤘다. 남희만 성공, 나머지는 실패.
낙타·소·자전거·릭샤가 뒤엉킨 길. 인도 옷을 사고 탄두리 치킨에 킹피셔 한 병.
침대칸 요금을 다 내고도 자리가 없었다.
자이살메르행이 23:15 출발이었는데 다행히 기차가 아직 있었다. 가족칸 침대 사이 신발 놓는 자리에 침낭을 펴고 잤다.
해 뜨기 전. 사파리 호객꾼들이 한 명이라도 더 잡으려 몰려든다.
추위에 떨며 기다렸지만 해는 안 뜨고 밝아만 오다가, 포기할 즈음 떠올랐다. 거만한 자세의 개 한 마리와 함께.
골목마다 가네쉬·락쉬미가 모셔져 있고 낙타가 유난히 많다. 서점에서 지도와 책을 한 보따리 샀더니 철도지도를 덤으로 줬다.
건물 밖 부조도, 안의 그림도 볼 만한데 다들 자기 조상 자랑이다.
하프 비슷하게 생긴 악기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박시시를 조르는 꼬맹이들과 함께 사막 도시의 일몰.
가장 서늘한 때라는데도 모자·선글라스·선크림에 비틀비틀. 오래 타니 허벅지가 아프다.
다른 마을을 낙타를 타고 지나는 건 적대적 표현이라 해서 걸어서 통과. 외지인을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해가 지자마자 급속도로 추워진다. 사막은 사막인가 보다.
덩굴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고 돌아가며 노래. 새벽 4시까지 수다. 불씨 위에 모래를 덮고 그 위에 침낭을 펴고 잤다 — 위는 춥고 아래는 뜨거워 밤새 몸을 뒤집으며.
사람들 소리에 깨서 눈을 뜬 순간 사막 위로 해가 떠올랐다.
첫날과 다른 길. “이 길도 괜찮은데” 하는 순간 저쪽에서 지프가 보이며 사파리 끝.
낙타가죽 벨트와 카메라 가방을 샀다. 공중부양처럼 벽에 박힌 계단도.
촛불을 켜준 옥상에서 몇 대 없는 차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의 밤을 내려다보며 맥주 한 잔.
인도의 역에는 개찰구가 없다. 승강장을 소가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소똥 지뢰밭.
6인용 자리에 7~8명. 산과 벌판, 길가의 원숭이떼를 지나며 다들 꾸벅꾸벅.
기념품 가게와 서점, 시장거리. 조금만 걸어가면 호수다.
호수 가운데 하루 650달러짜리 호텔이 떠 있다.
주변에서 제일 높은 편이라 거리낄 게 없는 전망.
30루피. 카메라피 100루피가 아까워 카메라를 두고 들어갔다가 후회 — 그림과 조각 보는 데만 한참 걸렸다.
75+25루피. 30분 투어라 섬은 곁만 둘러봤다. 멀찍이서 보는 시티 팰리스와 빨래하는 가트가 더 좋았다.
87루피. 릭샤왈라가 낭떠러지 옆 오르막을 릭샤 십여 대 앞지르며 폭주. 내려올 땐 거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30루피. 머리 위에 항아리를 올리는 건 신기했지만 전체적으론 실망.
릭샤는 이미 도망간 뒤. “누가 쳤는지 모르면 접수 못 한다”는 경찰과 한 시간 넘게 실랑이 끝에 들은 말은 “내일 와라”.
“인디안 스타일”로 여기저기 오가며 겨우 진료. 약 107루피.
전날 난리를 친 덕인지 금방 만들어줬다.
남아 있던 컵라면 몇 개에 감동하고, 선물용 그림을 500루피에.
올라가는 계단부터 심상치 않다. 사람들의 경건한 몸가짐에 저절로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신랑 민규, 신부 정용 누나. 브라만 한 명이 와서 자기네 말로 사회를 봤다. 여행 중 행사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물 유적을 볼까 하다 에어인디아를 찾아갔지만, 통화 중에 어이없게 정전. 차들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도시.
웨이팅도 같은 값을 받으니 침대 수와 상관없이 사람이 들어찬다. 고함과 사람을 타고 넘는 광경에 다들 새파랗게 질렸다.
30루피, 2시간. 길이 엉망이라 덜컹덜컹 제대로 잠도 못 자고.
MTDC는 연말이라 만실. 배낭을 다 뒤집어 차곡차곡 정리했더니 오히려 자리가 남았다.
아잔타 반대쪽으로 내려가다 도살장 같은 다리와 초원 위 하얀 집을 보고 돌아왔다.
100루피 부르는 술을 깎아 80루피에 열 병. 자정에 밖에서 폭죽 소리 — 아무 생각 없이 불을 붙였다가 몇 초간 앞이 안 보이고 며칠 귀가 울렸다.
1굴부터 28굴까지. 돌을 가져온 게 아니라 산을 통째로 파 들어가 만든 석굴이라 한 번 망치면 되돌릴 수 없다. 벽화는 생각보다 덜 남아 있고 앞쪽 몇 굴이 가장 잘 남았다.
석굴 안을 다시 파내어 조각한 스투파와 열반상.
버스 10루피 + 100루피. 전화 170루피, 과일 120루피.
5달러. 카일라사 사원 — 만든 방법에 놀라고 규모에 다시 놀란다.
2달러. 평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위압감이 느껴진다. 입구 안쪽 통로는 다른 세계로 가는 길 같고, 지하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 인형이.
탄두리 113루피, 인터넷 45루피, 술 80루피.
찹수이와 초우미엔 85루피.
금박 입힌 문자가 메카 방향으로 나 있고 이를 향해 예배한다. 사원이 학교이자 시험장이자 놀이터.
석류주스 25루피, 손수건 30루피, 물 끓이개 60루피.
입장료 5달러. 네 방향의 토라나에 빼곡한 부조. 정작 2인용 벤치 사진만 잔뜩 찍고 대탑 사진은 없다.
2루피.
술도 안 파는 동네라 할 일이 없어 아웅이에게 헤나를 부탁했다. 방콕까지 남았다는.
기차 68루피.
입장료 5달러. 건물 안팎이 온통 미투나 상. 처음엔 눈이 커졌다가 하도 널려 있어 시큰둥해졌다.
민규가 자전거 릭샤꾼과 역할을 바꿔 태우고, 진짜 릭샤꾼이 자전거로 따라왔다.
맥주 한 병 값이면 세 명이 밥 한 끼. 그럼에도 먹던 사람은 먹어야 산다.
버스 60루피.
단체는 바라나시를 거쳐 델리로 가서 귀국. 나·미나·재희·아웅 넷은 항공권을 바꿔 네팔을 올라갔다 방콕을 거치기로.
져가는 해를 보며, 또한 강 이쪽 편에서 불타 녹아내리는 시체들을 보며.
겨울옷을 입고 다닐 만큼 쌀쌀했다. 햇볕을 쪼이며 꾸벅꾸벅 조는 개들.
포카라까지 근 24시간이 걸리는 여정의 시작.
한 달 가까이 인도를 다닌 입장에서 엄청나게 깨끗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비수기라 물가도 싸다.
보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다른 느낌을 준다.
수수료 포함 322,953원.
맛이 기가 막혀 다들 정신없이 먹어댔다.
산을 보면서 먹으니 밥도 맛있다. 여기서부터는 넷이서.
한 명씩 한 명씩 탈진. 평생 기억에 남을 산행.
1~2시간 간격으로 산장이 있어 먹고 자는 걱정은 없다. 돈만 있으면.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오래 담그기 놀이를 하다 발이 얼 뻔했다.
처음엔 재미있었으나 바람이 장난 아니게 춥고, 나뭇가지가 사람을 쳐대고, 내리막은 거의 바이킹. 추위와 높이에 내내 떨며 내려왔다.
산에서 그렇게 먹어보고 싶던 닭으로 삼계탕을 해서 죽어라 먹었다.
처음엔 공기도 나쁘고 사람들도 시끄럽고 무섭기까지 했던 델리가, 한 바퀴 돌고 오니 왜 이리 깨끗하고 친절하게만 느껴지는지. 결국 가는 사람이 문제였던 건가.
처음엔 어리버리하고 무섭기도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적응됐다. 면세점에서 조니워커 블랙과 와인 한 병.
4시간 비행인데 시차로 새벽 1시. 밖에 나가 방 잡느니 공항에서 밤을 새기로. 카펫이 좋더라.
환율 1달러 = 41.97밧. 새벽인데도 벌써 후덥지근하다.
400밧. 파아팃 거리 피치 하우스 더블룸 160밧. 세븐일레븐이 버스 정류장보다 많은 나라, 인도에 있다 왔더니 천국이 따로 없다.
쪄 죽을 듯한 더위에 과일을 뜯어 먹으며 남쪽으로. 온통 금색으로 빛나는 것을 몇 개 떼어 오고 싶었으나 차마.
인천 10:40 출발, 홍콩 경유. 항공권 54만 5천 원.
박물관 40밧, 학생식당 덮밥 15밧. 학교 한가운데 커다란 야자나무.
자금성을 생각하고 가서인지 생각보다 작아 조금 허무했지만, 왓 프라깨우는 참 예쁜 사원.
20밧. 탑이 50개쯤 되는 절,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와불의 발가락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배 2밧으로 강을 건넌다.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같다기에 담장 밖에서 봤다.
짜이 7밧. 인도가 아니어서인지 유리컵에 줬다.
늦잠으로 출발이 늦어 택시(140밧)로.
약 160밧. 웨하스와 물수건, 음료수를 준다.
뚝뚝 50밧. 캄보디아 쪽은 점심시간이라 직원들이 큰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국경 비자는 무조건 1,000밧.
독일 배낭여행자의 손가락 다섯 개 덕에 1인 5달러로 흥정. 나가 게스트하우스 트윈 3달러.
조각된 커다란 얼굴들과 부조.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 앙코르의 마력.
문둥이왕 테라스는 아래 벽의 부조가 인상적.
서→남→동→북. 북쪽 부조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 더 돌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해가 지는 순간보다, 진 뒤 하늘색이 변해가며 세상이 앙코르 왓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끝에서 세 번째로 나왔다.
50km 넘는 길에 반띠아이 쓰레이를 지나면 비포장. 20분 산을 올라 만난 폭포는 눈이 높아진 뒤라 눈에 차지 않았다.
규모는 작아도 조각의 세밀함과 아름다움은 앙코르 최고. 붉은빛 도는 돌. 옆에서는 캄보디아 전통 음악 연주가.
목욕탕으로 썼다는 300m×700m 호수. 계단에 앉아 쉬었다.
정글이 유적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보여주려 거의 복원하지 않은 곳. 무너져 가는 유적의 슬픈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유해교반 조각. 남문 쪽이 보존 상태가 훨씬 좋다.
혼자 올라가 앞이 트인 난간에 걸터앉아 봤다. 내려가는 척하며 출구 반대쪽으로 천천히.
6달러. 8시가 되자 종업원들이 공연을 시작했다. “반갑습네다”.
푸르스름한 하늘빛에서 붉은빛으로. 앙코르 왓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태어나는 느낌.
사방으로 늘어선 문이 거울 두 개 사이에 선 듯하다. 복원이 덜 되어 어둡고 음침한 곳도.
예전엔 호수 가운데 탑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물이 다 빠졌다.
기단 위에 민가가 들어서 있다. 쁘리아 꼬 뒤에서 만난 동갑내기는 월급 40달러에 모또 기사가 꿈이라고 했다. 바꽁 옆 학교는 한쪽 벽이 없었다.
스피드 보트 21달러 대신 버스 6달러.
여기서 각자의 길로.
왔던 길을 되짚어 뽀이뻿–아란야쁘라텟 국경을 넘어 카오산으로.
선물 3천 밧어치, 양주 한 병 포함. 카드 기록에 1월 30일 1,140밧(32,185원)이 남아 있다.
2002년 12월 18일에 떠나 45일 만의 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