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황민욱의 여행기. 2003년 1월 23일 방콕 도착부터 1월 29일 앙코르를 떠나기까지.


1월 23일

날이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명색이 겨울인지라 김포공항까지 택시(3900원)를 타고 갔다. 두꺼운 옷을 가져가면 짐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는 공항버스(4000원)으로 이동을 하였다. 내가 산 비행기 표는 10시 40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홍콩을 거쳐 방콕에 16시 40분(local time)에 도착하는 비행기였다. 항공권 요금은 54만 5000원(TAX,전쟁보험료 포함58만원)이었다. 중국에서 15원(약 2250원)을 주고 산 시계가 있긴 하였지만 물만 들어가면 시계가 죽어 버리고, 또 배터리도 거의 다 떨어진 것 같아서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TIMEX 시계($45 ,52490원)를 한국 돈으로 샀다. 홍콩으로 가는 도중 기내식(fish선택)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하지만 Vallentine은 맛있었다. 약 4시간을 날아 홍콩 공항에 도착하였다. 홍콩 공항에서는 1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나와서 공항 구경을 하였다. 공항에 내리자 면세점 할인권(홍콩$30)을 줬으나 마땅히 살 것이 없어서 구경만 하였다. 사실 시계를 인천공항에서 산 게 좀 아까웠다. 홍콩 공항은 무척 컸다. 인천공항보다 규모는 더 큰 것 같았다. 구름이 좀 짙게 껴서 시내는 잘 안보였다. 사실 안개 안 껴도 시내가 잘 보일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멀리 호텔 같은 건물이 하나 보였고, 바로 앞에는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공항 내부에 면세점이 여러 곳 있었으며 공항은 ‘Y’밑에‘■’자가 붙어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공항 구경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비행기를 타자, 저녁이 나왔다. 태국 시각으로 3시 30분이었다. 이번에도 seefood를 시켰는데 이번에는 먹을만 했다. 그리고 Singha 맥주(태국산)를 줬는데, 얼어 있어서 녹여 먹어야 했다. 끝내 다 녹여 먹지 못해서 좀 아쉬웠다. 처음 먹어본 Singha 맥주의 맛은 괜찮았다. 16시 40분 방콕 돈므앙공항에 내렸다. 공항에 내려서 수속을 대충 밟은 다음 보조가방을 큰 가방에 넣어 하나로 만들었다. 공항 안 TAT에서 태국에 한 달간 있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자료란 자료는 모두 얻었다. 결국 그 자료들은 거의 보질 않았다. 17시 30분 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밀려오는 열기. ‘헉! 여긴 열대 지방이구나 정말 덥군, 그리고 또 습하네.’ 정말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중국에서 삐끼들에게 질렸었기 때문에 아주 자신 있는 듯한 걸음걸이로 버스정류장을 향하여 걸었다. 59번 버스를 타면 카오샨 까지 3.5B에 갈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100B짜리 공항버스를 타지 않고 시내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버스정류장에서 서행하는 버스에 올라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 이 나라도 버스 타기는 만만해 보이지 않는군.’라는 생각을 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59번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한국에서 익힌 솜씨로 잽싸게 휙 몸을 날려 버스에 타고 자리에 앉았다. 안내군 아저씨가 왔다. 내가‘타논 카오샨’하고 말하자, 아저씨는 ‘노 노 노 노’ 하면서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이상하다 분명히 책에 59번이 간다고 되어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지도를 펼쳤다. ‘내 말을 못알아들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지도를 들여다 보는데 빨간 번호판을 단 태국 버스는 중간 까지만 운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저씨도 다시 내게 와서 내리라는 손짓을 계속 하였다. 일단 내렸다. 다시 59번이 지나갈거란 생각에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에어콘버스 59번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버스는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이상하다 이 버스정류장은 에어콘 버스는 안 서나?’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차를 기다렸다. 다음차도 그냥 지나갔다. 카오샨에 늦게 도착 하면 방을 구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어서 시내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다시 공항으로 걸어갔다. 버스로 온거리가 꽤 되어서 약 10분 가량 온 방향으로 걸어가서 국제선 2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18시 30분에 공항버스(100B)를 탈 수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카오샨으로 가면서 공항버스를 타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공항버스는 고속도로로 갔는데 아래 일반도로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는 태국의 교통정체, 처음에는 경험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약 40분 가량 달려서 카오샨에 도착하였다. 카오샨의 밤거리 서양인들로 북적대고, 먹을것이 널려 있는 그 곳, 약간 지저분 한 듯이 보였지만 활기가 있는 카오샨은 서양인들이 설치는 것만 빼면 왠지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 개업한 정글뉴스 G.H.에 키보드(14000원)와 청사초롱4개(15000원)를 가져다 드리기로 했기 때문에 정글뉴스를 향하였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져간 물건을 드리고 1000B를 받았다. 그리고 수고했다면서 저녁을 대접해주셨다. 나도 답례로 태우 주려고 사간 PET 참이슬 한병을 꺼내서 같이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도미토리(90B)에서 묵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고 카오샨 거리를 구경하러 카오샨으로 나가다가 태우를 만났다. 원래 10시쯤 정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길에서 만난 것이다. 태우가 숙소를 알려주며 양주를 사왔으니 같이 먹자고 놀러오라고 했다. 밤에 태우 방(피치게스트하우스 트윈룸:약간 지저분해보임. 방음 전혀 안됨, 주인 싸가지 없음)에서 태우와 태우와 여행을 함께 했던 (나를 얼굴 뽀얀 오빠라 부르던) 3명의 여학생들과 양주 먹고 3시까지 카오샨을 돌아다니다 숙소에 들어와서 잤다.

1월 24일

원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캄보디아로 갈려고 했으나 간밤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늦게 일어나서 갈 수가 없었다. 8시쯤 일어나서 시내를 돌아다닐 준비를 하고 8시 30분쯤 정글 뉴스를 나섰다. 첫 번째 목적지는 국립 박물관(40B)이었다. 박물관은 나름대로 잘 꾸며져 있었으나 별로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박물관에서 물(10B*2)사먹음. 박물관에서 몇 군데 보고 싶은 곳만 대충 훑어보고 다음 목적지인 탐마쌋 대학교를 향했다. 학교는 작았지만 우리나라의 학교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단지 학교 한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야자나무와 학생식당이 건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 밖에 있다는 것이 색다른 모습이었다. 학생식당에서 점심(15B)을 사먹었다. 덮밥 종류였는데 반찬을 2-3가지 올려줬는데 맛있었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사먹은 밥이었는데 그럭저럭 잘 맞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나서 학교 후문으로 나와서 타 파짠에서 배(2B)를 타고 톤부리 쪽으로 배를 타고 건너서 마히돈 대학 씨리랏 병원에 딸린 해부학 박물관을 갔다.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다. 법의학 박물관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다시 배(2B)를 타고 타 창으로 건너왔다. 이번에는 왕궁(200B)으로 갔다. 역시 사람이 많았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본 관광지라 그런지 참 이색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생각보다 작아서 약간 허무하긴 했었다. 중국의 자금성을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왕궁의 뒷부분은 공개가 안되어 앞부분만 살짝 돌아보고 나와야 했다. 왕궁과 같이 있는 왓 프라깨우는 참 예쁜 사원이었다. (사실은 보고 온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기록을 하는 거라 기억이 잘 안 난다. --;;) 왕궁에서 음료수(20B)를 사먹는데 내가 “How much?" 하고 물으니 한참 고민하다가 ”얼 슈“라고 중국어로 대답을 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왕궁을 나와서 보석사기로 보이는 삐끼의 유혹을 뿌리치고 왓포로 갔다. ‘왓 포’(20B)는 왕궁 뒤쪽에 있는 탑이 매우 많은 (아마 50개쯤?)절이다. ‘왓 포’도 가볼만한 절이었다. 탑이 많아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왓포에서 나와서 타 띠안으로 가서 타 아룬으로 배(2B)를 타고 강을 건넜다. 왓 아룬은 절 밖에서 보는 것이나 안에서 보는 것이나 똑같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고 담장 밖에서 보았다. 절 옆에는 스님들이 다니는 학교 같은 것이 있었는데 벽이 없기 때문에 길에서 스님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다시 강가로 나와서 강가에서 방콕 시내를 보는 모습이 괜찮았다. 다시 타 띠안으로 배(2B)를 타고 나와서 차이나 타운으로 버스(3.5B)를 타고 왔다. 잠깐이었지만 방콕의 교통 체증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방콕은 무척 더운 도시이기 때문에 에어콘이 없는 버스는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다닌다. 그때 들어오는 매연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차이나 타운에서 목이 말라서 세븐 일레븐에 가서 콜라(17B)를 하나 사먹었다. 차이나 타운은 역시 복잡했다. 그러나 내가 걸어 다닌 곳은 한자 간판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중국 분위기라기 보다는 그냥 복잡한 시장 골목 같은 느낌이었다. 돌아 다니다가 반쯤 마른 오징어를 구워 파는 노점에서 오징어 꼬치를 1개(5B) 사먹었는데 덜 익은 것 같아서 먹다가 버렸다. 왠지 덜 익은 음식을 열대 지방에서 먹는 것은 좀 찜찜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전자 상가와 같은 싸판 렉 전자 상가 거리를 갔었는데 규모도 작고 별로 물건도 많아 보이질 않았다. 후배가 워3 CD를 사 달라고 부탁해서 찾아보았는데 보이질 않았다. 다시 인도인 거리를 갔는데 역시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약 100m도 안되는 길이로 보였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용기(?)를 내어 인도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짜이(밀크티,7B)를 시켜 먹었다. 원래 인도에서는 유리컵에 주는 일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는 인도가 아니어서 그런지 유리컵에 줬다. 차는 맛있었다. 한참(약 20분) 걸어서 랏차니 선착장에 와서 배(8B)를 타고 카오샨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왕궁주변 관광 하루 차이나 타운 주변 하루 이렇게 따로 일정을 잡았었는데 대충 돌다 보니 하루에 두 곳이 모두 관광이 가능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방 값(도미토리 90B)을 치르고 모자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카오샨으로 가는데 길을 잘 못 들어 강가 쪽으로 가다가 태우와 인도아가씨들(태우랑 같이 여행한 3명을 나는 그렇게 부른다.)을 만났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만나다니 만날 인연은 만날 인연이었나 보다. 같이 디너 크루즈 가자고 했으나 다음날 캄보디아를 가기 위해 모자와 복대, 그리고 모기약을 사야 했으므로 같이 가지 못했다. 결국 카오샨에서 복대는 맘에 안들어서 안사고 모자(200B?)와 뿌리는 모기약(가격 까먹음)을 샀다. 저녁은 렉아저씨 라면집에서 고모꾸라면(60B)를 먹었다.

1월 25일

태우와 4시 30분에 파쑤멘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시계의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는 바람에 5시 30분에 일어나서 공원에 나갔었다. 그러나 태우도 기다리다 5시 30분까지 기다리다가 숙소로 돌아가 버려서 만나지 못했다. 결국 7시에 만나서 출발을 하였다. 출발이 늦어서져서 방콕시내의 교통체증이 걱정되었다. 여기서 늦게 출발하면 씨엠립에 늦게 도착하게 되고, 그러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북부 버스 터미널까지 가려 했으나, 버스가 안 와서 택시(140B,고속도로 이용료30B포함)를 타고 갔다. 택시를 타고 가니 2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 때문에 늦어졌고 택시를 타자고 한 것도 나였으므로 택시비 중 내가 100B를 냈다. 다행히 북부터미널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아란행 에어콘 1등 버스(약160B)를 탈 수 있었다. 버스 표를 끊으니 웨하스와 물수건 그리고 음료수를 주었다.) 태국의 에어콘 버스에 대한 악명(너무 너무 춥다는)을 익히 들어 걱정했었으나 바람이 나오는 곳을 막아 두니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버스는 중간에 몇 번 정차 하였으나 막힘 없이 잘 달려갔다. 4시간이 걸려 국경 도시인 아란야쁘라텟에 11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아란 터미널에서 물을 사고는 뚝뚝(50B/2명)을 타고 국경까지 갔다. 국경에 가면 캄보디아 꼬마 소매치기들이 많다고 해서 무척 긴장을 했었는데 별로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긴장하여 적대적인 제스츄어를 취한 것이 더 미안할 정도였다. 태국쪽 국경 사무소에서 출국 신고를 마치고 캄보디아 쪽 국경을 가니 점심시간이어서 근무를 안하고 있었다. 커다란 식탁에 직원들이 둘러 앉아 밥을 같이 먹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식사가 끝나자 마자 바로 근무를 시작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국경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원래 국경 비자는 $20혹은 1000B를 내게 되어 있는데 무조건 1000B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받은 비자에는 비자비는 $20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국경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환차익을 챙기는 것 같았다. 비자를 받고 주차장쪽으로 가자 마자 삐끼들이 달라 붙었다. 처음에는 $10달라부터 얘기를 하였으나 흥정을 하여 택시 뒷자리에 250B에 흥정을 해서 탈려고 하는데 독일 배낭여행자 하나가 우리랑 같은 차에 와서 흥정을 하면서 손가락 5개를 펴서 보였다.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가까이 가 물어 보니 $5면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흥정을 해서 뒷자리에 우리 3명이서 각 $5에 흥정을 해서 타기로했다. 차에서 타서 좀 기다리니 운전기사가 앞자리 조수석에 2명(태국인 혹은 캄보디아인)을 더 태웠다. 나중에 살짝 물어 보니 그들은 $3을 주었다고 하는데 2명에 그 가격을 줬는지 각각 $3인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는 적절하게싸게)흥정을 해서 온 것이었다. 더 불편하고 오래 걸리는 픽업 뒷자리에 4명이 타고도 $6씩 준 사람도 있었다. 길은 거의 비포장 길이었으나 차가 비교적 많이 다니는 길이라 캄보디아 길치고는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씨소폰에서 쉰 시간 20분 가량을 빼고 3시간 만인 4시쯤에 씨엠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길에 펼쳐진 풍경은 거의 같았다. 농경지는 거의 보이지 않고 말라 있는 평원이었다. 가끔 물 소 들이 보였고 건기라 물이 많지는 않고 가끔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보였다. 중간에 주유소 같은 곳에 들렸는데 차에다 깔때기를 꽂고 석유통 같은 걸로 기름을 넣었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는 옆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원래 캄보디아에서 차는 우측 통행이라 운전석이 좌측에 있어야 하지만 이 차(도요타 캄리:캄보디아에서 참 많이 봤다.)는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인지 운전석이 우측에 있었다. 차에 에어콘이 있기는 했지만 뒷자리까지 바람에 이 오기에는 에어콘 바람이 너무 약했다. 그래도 비교적 편하고(보통 캄보디아에서는 승용차 조수석에 2명 뒷자리에 4명이 탄다.) 빠르게 씨엠립에 도착하였다. 나가 게스트하우스가 싸고 괜찮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나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내려서 숙소를 정했다.($3/트윈 베드, Bath inside) 베트남 음식점의 happy hour 시간에 앙코르 맥주 2캔($0.7*2)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저녁은 구시장 쪽에서 각자 약$1를 주고 먹었다.

1월 26일

앙코르 구경 첫째 날이다. 친구가 묵고 있는 도쿄게스트 하우스에서 오토바이 3일에 일출 일몰 각 1회 포함 $20 룰루오스를 포함할 경우 $5 추가에 계약을 하였다. 결국 룰루오스를 보는 바람에 $25를 주었다. 내 오토바이 기사의 이름은 ‘라이’였다. 원래 우리가 계획을 짜 볼까 했는데 결국 그쪽에서 추천해주는 코스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유적지 수가 많아서 헷갈리기도 했고, 그쪽에서 추천해주는 코스에 우리가 보고 싶은 곳도 다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앙코르 왓의 입장료는 3일권 $40(참고 1일권 $20)이었다. 앙코르 왓 입장권을 만들 때 사진을 붙여서 무슨 증명서처럼 만들어 준다. 나중에 기념도 되고 좋은 것 같았다. 나는 사진을 미리 준비하여가서 준비한 사진을 붙였지만, 사진이 없는 사람은 즉석에서 찍어주기도 한다.

7시쯤 출발해서 첫 번째 도착한 곳은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는 바욘 사원이었다. 처음 타보는 오토바이여서 긴장이 되었지만 의외로 편하고 재미있었다. 또한 앙코르 유적주변은 대부분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가는 길도 좋았다. 바욘사원, 앙코르 톰의 유적 중 대표적인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조각되어져 있는 커다란 얼굴들, 그리고 부조들을 비롯한 조각들은 정말 대단한 느낌이었다. 아름답기도 했지만, 아름답다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앙코르의 매력 혹은 마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걸어서 바푸온으로 이동을 했다. 바푸온의 오른쪽을 끼고 돌아서 바푸온을 본뒤에 옛 왕궁터 쪽을 거쳐서 쁘리아 빨리라이를 보았다. 쁘리아 빨리라이 안에서 하늘을 바라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후 다시 큰 길 쪽으로 나와서 피미아나까스를 보았다. 그 후 문둥이왕 테라스와 꼬끼리 테라스를 보았다. 문둥이왕 테라스는 그 아래 벽에 있는 부조들이 인상적이었다. 여기까지 돌아본후 점심을 먹으러 다시 시엠립으로 돌아갔다. 점심식사($1)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식사 포함 2시간) 이번에는 앙코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앙코르 왓으로 향했다. 오후 일정은 앙코르 왓 구경과 앙코르 왓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다. 오후 2시쯤 다시 앙코르 왓에 도착 했다. 앙코르왓의 부조는 역시 대단했다. 조각의 섬세함이나 조각의 내용이나 훌륭했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 때문에 처음에는 자세히 보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대충 보게 되었다. 그런데 서쪽부조부터 보기 시작하여 남쪽부조 동쪽부조, 그리고 북쪽 부조를 볼 때쯤 어느 관광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한국인 가이드 한 분을 만났다. 그 일행분들 중 한 분의 말씀이 그 가이드 분이 여기 앙코르 전문가이시며, 여기 있는 다른 한국인 가이드를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그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앙코르 왓을 관람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끼리 책을 찾아 가면 볼 때는 찾기 힘들 던 것 들이 그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잘 보이고 더 좋았다. 앙코르 왓은 여럿이 모여서 돈을 조금 투자해서라도 가이드에게 설명을 들으며 구경을 할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 분을 따라 앙코르 왓 부조를 한 바퀴 더 돌고 위로 올라갔다. 앙코르 왓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느낌이 있는 듯하다. 마력이 있는 걸까 사람을 마음을 조정하는 힘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앙코르 왓에서 본 일몰은 정말 멋있었다. 해가 지는 그 순간 보다, 해가 진 후에 하늘의 색깔이 점점 변해 가면서 어두워지는 그 모습 세상이 앙코르 왓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 직후, 관리하는 사람들이 밖으로 내보내지만 최대한 버티면서 맨 마지막에서 3번째로 나왔다. 나오다가 뒤 돌아서서 다시 하늘을 보고, 나오다가 드러누워서 하늘을 보고 그런 식으로 천천히 나왔다. 세상이 앙코르로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앙코르 왓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 왔다. 이날 나는 좀 피곤하여 밥을 먹지 않았다. 쉬려 했으나, 태우가 맥주와 과일을 사 가지고 와서 결국 맥주를 7캔 먹게 되었다.($3.5) 이날 물 값으로 약 1500riel정도 들었다.

1월 25일

전날 맥주를 많이 마셔서 인지 늦잠을 잤다. 원래 새벽 4시 30분에 앙코르 왓에서 일출을 보려 했으나 결국 7시에 숙소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앙코르 유적 북동쪽에 있는 폭포 있는 곳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달려 폭포 앞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거리로는 50km이 넘는다고 했고, 중간(반띠아이 쓰레이)를 지난 후에는 비포장이어서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다. 오토바이를 오래 타서 내렸을 때는 다리와 엉덩이가 무척 아팠었다. 열대의 산을 느끼며 약 20분 가량 산을 올랐을 때 폭포가 나타났다. 그쪽 개념으로는 폭포였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에 있는 폭포보다 못한 작은 폭포들이었다. 폭포 위쪽으로 계곡에 있는 바위에 작은 불상들과 여러 조각을 해 놓은 것들이 보였다. 전날 앙코르 유적을 안 보았으면 대단해 보였겠지만 이미 하루동안 앙코르 유적들을 봐서 눈이 높아진 우리에게는 눈에 차지 않았다. 아마 엉덩이 아프게 고생하고 와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곳에서 한 일가족을 만났는데 아주머니와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고 올라가다 말고 중간에 있고 터프하게 생긴 아저씨는 폭포까지 올라갔다 오셨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터프하게 생긴 경상도 말씨의 아저씨는 울산 학성고등학교의 선생님이셨다. 그렇게 폭포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서 반띠아이 쓰레이로 향하였다. 폭포에 갈 때는 새벽이라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없어서 괜찮았는데, 올때는 맞은편에서 차가 많이 와서 먼지가 많이 났다. 때로는 한쪽 옆에 오토바이를 세웠다가 오고, 때로는 물 티슈로 입을 막으면서 반띠아이 쓰레이에 도착하였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규모는 작지만 조각의 세밀함과 아름다움은 앙코르 유적 중에 최고로 치는 사원이다. 돌의 재질도 다른 곳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붉은 빛을 띄는 재질이었다. 유적의 한쪽 옆에서는 캄보디아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자유시간으로 허기를 채웠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반띠아이 끄데이였다. 반띠아이 끄데이를 나와서 앞에 있는 쓰라쓰랑의 계단에 앉아 있었다. 목욕탕으로 쓰였다는 곳인데 300m*700m으로 호수 같았다. 옆쪽에는 튜브를 파는 곳도 보였다. 물론 이곳에서 수영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곳까지 구경한 후 시엠립 시내로 들어 와서 식사를 하였다. 오늘도 역시 밥(약$1) 먹는 시간 쉬는 시간 포함하여 2시간 가량 쉬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구시장의 서점에서 론리플래닛-캄보디아 복사본을 $2.5를 주고 샀다. 오후의 첫 일정은 따 쁘롬이었다. 따 쁘롬은 정글이 앙코르 유적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거의 복원을 하여 두지 않은 곳이다. 오전에 봤던 반띠아이 쓰레이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난 유적 유물들을 볼 때 조형적 아름다움보기 보다는 그 곳의 느낌,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왠지 이 곳 따 쁘롬의 무너져 가는 유적의 슬픈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따 쁘롬에서 나와서 간 곳은 따 깨우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톰마논이었는데 이곳은 규모는 작았으나 조각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다음으로 본 곳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차우 싸이 떼보다 였는데 이곳은 중국에서 복원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복원 기술이 의심이 가긴 했지만, 어쨌든 큰나라이고 힘이 있는 나라니까 이곳 복원을 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 공사를 하는 바람에 유적의 내부는 돌아 보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돌아보고 나니 저녁때가 되었다. 오늘은 프놈 바켕에서 일몰을 보기로 한날이다. 프놈바켕으로 이동을 하면서 승리의 문과 앙코르 톰 정문에서 ‘유액의 바다 휘젖기’조각들을 보고 갔다. 승리의 문에 있는 조각들은 보존 상태가 좀 떨어졌지만, 앙코르 톰 정문에 있는 조각들은 상태가 꽤 좋은 편이었다. 일몰은 혼자 조용히 보고 싶어서 친구를 버리고 혼자 올라갔다. 늦게 간 편이었지만, 혼자 갔기 때문에 앞이 전혀 안가리는 난간에 걸터 앉아 편안히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앞에 있는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국제적 망신이 될 것 같아서 참았다. 옆에는 학성고에서 선생님들이 단체로 오셔서 일몰을 보셨고, 오른쪽에는 조카 2명을 데리고 온 어떤 여자 분이 일몰을 보고 계셨다. 6시쯤 해는 지고 관리인들은 사람들을 내려 보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어제처럼 내려 가는 척 하면서 출구의 반대쪽으로 내려가서 천천히 하늘 색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렸왔다. 개인적으로는 프놈바켕의 일몰도 멋있었지만 어제 본 앙코르 왓에서의 일몰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저녁은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 랭면($6)에서 먹었다. 이 곳의 물가 수준에서 보면 대단히 비싼 가격이다. 손님의 대부분은 남한의 관광객이었는데 간간이 현지인들도 있었다. 아마 무척 잘 사는 사람일 것이다. 냉면 맛은 좋았지만 냉면 국물이 별로 시원하지 않아서 아쉬었다. 열대 지방을 여행하다보면 저절로 한국의 시원한 냉면이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원함’이라는 측면에서 그곳의 냉면은 남한의 냉면 보다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반찬을 서너차례나 더 달라고 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계속 더 가져다 준 그네들의 친절은 정말 감동 할 많 했다. 식사를 마치고 좀 앉아 있는데 8시쯤 되자 종업원들이 공연을 시작하였다. 처음 부른 노래는 ‘반갑습네다’였다.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고 다른 종업원 몇 명은 춤을 추었다. 나중에는 종업원 한 명이 내 손을 잡더니 '앉아서 박수만 치지 마시고, 나와서 춤 춥시다. 일어나서 춤추고 노래해야 좋지 앉아서 노래만 부르면 뭐가 좋습네까?‘라고 하며 내 손을 잡아 이끌기도 했었다. 아마 전 같으면 안기부에 끌려가서 조사 받을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1월 28일

오늘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앙코르 왓으로 일출을 보러 갔다. 새벽이라 그런지 오토바이에서 맞는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워낙 일찍 와서 인지 앙코르 왓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앙코르 왓의 한 가운데에서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앙코르에서 본 일출 또한 멋있었다. 첫 날 본 앙코르 왓에서의 일몰이 세상이 앙코르 왓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앙코르 왓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해가 뜨기 전의 푸르스름한 하늘 빛에서 붉은 빛으로의 변화는 신비로웠다.

해가 뜨는 것을 본 후 첫 번째로 본 곳은 쁘리아 칸이었다. 이곳은 사원의 중앙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문들이 나열하여 있다. 그래서 가운데에서 문을 보면 웬지 거울 2개의 사이에서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쁘리아 칸도 복원이 덜 되어 있어 정글속에서 유적이 어떤 식으로 있었는지를 가름해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풀과 나무들 때문에 어둡고 음침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이런 폐허 같은 분위기를 좋아 하는 나에게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니악 뽀안 이었다. 니악 뽀안은 예전에는 호수 한 가운데 탑이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물이 다 빠져있다. 이곳에는 탑을 중심으로 4면에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그중 사람 조각이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원래 물이 있던 곳이어서 그런지 물이 있는 사진에서 본 모습 보다는 조금 덜 멋있는 것 같았다. 니악 뽀안을 본 후 따 쏨을 거쳐서 동메본으로 갔다. 동메본은 전에 물에 둘러 쌓여 있던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약간 높게 되어 있었다. 사원 위에 올라가면 주변 숲들을 둘러 볼 수 잇게 되어 있었다. 사원의 귀퉁이에 조각이 잘 되어 있는 코끼리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면서 전에는 바라이였을 곳을 보았는데 아직 깊지는 않지만 물이 넓게 고여 있는 곳이 많았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프레 룹이었다. 이곳 역시 동 메본과 비슷한 느낌의 사원이었다. 여기까지 본 후 점심(약$1)을 먹고 룰루오스 유적군을 향하였다. 룰루오스 유적군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다녀본 캄보디아의 길 중 최고였다. 2차선 도로였지만 옆쪽으로 갓길도 있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롤레이 유적이었다. 지금껏 다른 유적을 많이 봐서 인지 약간 실망스러웠다. 다른 유적들 보다 규모도 작았고, 복원도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사원을 위해 쌓았을 기단 위에는 일반 민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사원의 흔적은 조금 밖에 보이지 않았다. 민가 주변을 돌아보니 전에 사원의 건축자재로 사용되었던 것 같은 돌들이 보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쁘리아 꼬 였다. 이곳 역시 그다지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사원의 뒤에서 캄보디안 인을 만나서 몇 십 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랑 동갑인 남자 애였는데 이 사원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한 달에 $40을 받는 다고 했다. 사실 캄보디아에서는 월급 $40도 못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신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해서 캄보디아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바꽁 사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알면 여행자 식당에 취업을 하더라도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여동생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 애의 꿈은 오토바이(모또)를 사서 모또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너는 영어를 잘하니까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 라고 했더니 가이드가 되려면 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모또 기사에게 3일동안 줄 돈이 $25인데 이 사람은 한달 월급이 $40이니 모또기사가 꿈일 만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오토바이를 한 대 사서 이 사람에게 빌려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1년 안에 갚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식으로 하면 이쪽의 질서가 깨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캄보디아에도 빈부의 차이는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바꽁 이었다. 룰루오스 유적군 중에 가장 크고 볼만한 유적이었다. 유적 옆에는 절과 학교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학교에는 이상하게 한쪽 벽이 없었다. 관광객에게 보라고 그렇게 만든 것인지 더우니까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안 좋아 보였다. 서양 관광객들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수업 방해를 하는 것 같아 안 좋아 보였지만 이왕 방해된 수업, 나도 한 장 옆에서 찍었다.

룰루오스 유적이 생각보다 작고 볼 것이 적었기 때문에 오후 일정은 일찍 끝났다. 우리는 시장으로 와서 모또 기사를 돌려보내고 구시장에서 기념품 구경을 하였다. 내일 이동하면서 먹을 빵(1000riel)과 물(2000riel)도 샀다. 저녁에는 밥($1)와 맥주(2캔 정도,$1)을 먹고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 했으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후 일정 룰루오스 유적군을 마지막으로 나의 앙코르 여행은 모두 끝이 났다. 다시 표를 끊고 모토를 대절하여 몇 일 더 있다 갈 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이상했다. 앙코르 유적을 보는 내내 기분이 약간 쳐져있었다. 지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뭔가 슬픈 감정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뚜렷한 이유는 없었는데 그냥 우울했고 혼자 있고 싶었었다. 앙코르의 마력인가? 앙코르는 확실히 뭔가 알 수 없는 마력을 지닌 것 같았다. 그 마력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무한한 희열에 들떠 있게 만들기도 하고 나처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무너져 가는, 사라져 가는 유적의 우울함이었을까? 난 지금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냥 앙코르의 위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1월 29일

드디어 앙코르를 떠나는 날이다. 내가 탈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는 7시에 출발하니까 6시 30분까지 준비를 마치라고 했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준비를 끝마쳤다. 같이 있던 친구 태우는 방콕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데 7시까지 준비를 하라고 했다며 조금 더 늦게 까지 잤다. 프놈펜까지 스피드 보트는 $21, 내가 탈 버스는 $6이라고 해서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환율 메모

태국환율 1B(밧)=29원
라오스 환율 1$=10500K(낍)
특별히 환전해주거나 하는데도 별로 없는 듯 하고 일반적으로 달러로 물건값을 계산하면 리엘로 거슬러준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달러당 3900리엘인데, 가게마다 달라서 어떤 가게는 50센트짜리를 사고 1달러를 내면 1900리엘, 어떤데는 2000리엘을 거슬러준다.